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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정지의 힘 - 백무산

by tirol 2020. 6. 7.

정지의 힘

 

백무산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백무산,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창비, 2020>

 

 

<tirol's thought>

 

'2020년 교보문고 광화문글판 여름 편'으로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올라왔다.

코로나 19로 세상이 정지해 있는 이 하 수상한 시절에 어울리는 시다.

 

검색을 해보니 백무산 시인이 올해 펴낸 열번째 시집에 실린 시인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34464.html)

2016년 4월에 '현대시학'에 냈던 시를 수정해서 실은 듯하다. (http://blog.daum.net/coreapq/2676)

2016년 버전의 마지막 구절은,

'씨앗처럼 정지하라, 그 힘으로 우리는 피어난다' 인데

'우리는'이라는 주어가 '꽃은'으로 바뀌어 앞으로 나오고, '그 힘으로'가 '멈춤의 힘으로'로 바뀌었다.

 

시인은 '정지하라'고 소리치지만

우리에게 '정지'는 멀고 먼 단어가 아니었던가

어쩔 수 없이 '정지'를 하고 보니 시인의 이런 목소리도 들리는 것이 아닌가

 

'정지'할지어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유를 알기 위해서

이유를 알고 나면 피지 말라고 해도 꽃은 피지 않겠는가 안 피면 또 어떤가

꽃을 피우겠다는 마음을 멈추는 것이 '정지' 아닌가

그렇다면 이유를 알겠다는 마음은?

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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