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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선잠 - 박준

by tirol 2019. 11. 23.

선잠

 

박준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18>

 

* tirol's thouht

 

연말이 가까와 오니 옛친구들 만날 일이 는다.

어제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배가 고프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집어먹는 안주처럼

오래되었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설렁설렁 나누며 술을 마셨다

한 친구가 당나라의 명필 '안진경' 얘기를 잠깐 꺼냈다가 집어 넣었다.

'그해 우리는'으로 시작하는 이 시를 읽으면 떠오르는 희미한 '그해'는 언제 적 '그해'인가

몇 해의 기억이 겹쳐진 것 같기도 하고,

진짜 그런 날들이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가, 부끄럽기도 한  '그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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