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을 불러도
전동균
산밭에
살얼음이 와 반짝입니다
첫눈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고욤나무의 고욤들은 떨어지고
일을 끝낸 뒤
저마다의 겨울을 품고
흩어졌다 모였다 다시 흩어지는 연기들
빈손이어서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군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왔고
저희는
저희 모습이 비치면 금이 가는 살얼음과도 같으니
이렇게 마른 입술로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당신을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전동균,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창비, 2019>
* tirol's thouht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
첫눈은 내렸다고 해야할지 아니라고 해야할지 고민이 되지만
'빈손이어서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는' 계절이라는 사실은 분명한 듯 합니다.
한 계절이 가고 다른 계절이 오고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고.
중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것 같은데,
'개체의 발생은 종의 발생을 반복한다'는 얘기처럼
계절의 반복은 생애의 반복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무는 생애처럼 잦아드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부끄러워지는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요
결국은
당신을 불러볼 수 밖에요
마른 입술로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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