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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저녁길 - 김광규

by tirol 2004. 10. 5.
저녁길

김광규


날 생각을 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요즘은 달리려 하지도 않는다
걷기조차 싫어 타려고 한다
(우리는 주로 버스나 전철에 실려 다니는데 )
타면 모두들 앉으려 한다
앉아서 졸며 기대려 한다
피곤해서가 아니다
돈벌이가 끝날때마다
머리는 퇴화하고
온 몸엔 비늘이 돋고
피는 식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눈을 반쯤 감은 채
익숙한 발걸음은 집으로 간다

우리는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간다
파충류처럼 늪으로 돌아간다

* tirol's thought

오늘 아침도 나는 돈벌이를 위해 늪에서 나왔다.
이제 그만 날 생각 따위는 버리라고
은근하지만 끈덕지게 설득하는 주변 파충류들의 얘기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날아보고 싶다.
늪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졸린 눈을 부릅뜨고 소설책을 읽는 나는
쉽게 피가 식지 않는 철없는 파충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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