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다는 것
고운기
오래된 내 바지는 내 엉덩이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칫솔은 내 입안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구두는 내 발가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빗은 내 머리카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귀갓길은 내 발자국 소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아내는 내 숨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바지도 칫솔도 구두도 빗도 익숙해지다 바꾼다
발자국 소리도 숨소리도 익숙해지다 멈춘다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고운기,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창비, 2001>
tirol's thought
오래되고 익숙해진 것들에 감사하기
때가 되면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오래되고 익숙해진 것들을 조용히 바라보기
때가 되면 멈추는 것을 받아들이기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를 맡기고 살기
'시 읽어주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쉰이 되었다 - 이면우 (4) | 2019.05.10 |
---|---|
국수 - 백석 (2) | 2019.05.02 |
다시 봄이 왔다 - 이성복 (0) | 2019.03.21 |
다시 한번 - 손월언 (0) | 2019.03.07 |
소쩍새 - 윤제림 (0) | 2019.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