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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여백 - 도종환

by tirol 2007. 4. 25.
여백

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 source: http://blog.naver.com/gulsame/50015807253


* tirol's thought

프랭클린 플래너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가 '소중한 것 먼저하기'를 설명하던 동영상 생각이 난다. 코비는 여러가지 태그가 붙은 돌을 투명한 상자 안에 넣는데 큰 돌에는 '가정', '봉사', '건강' 이런 것들이 써있고 작은 돌에는 '수다떨기','쇼핑','TV 보기' 같은 제목들이 써있다. (솔직히 말해서 정확히 어떤 태그들이 돌에 붙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큰 돌에는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이 그리고 작은 돌에는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씌여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태그는 내가 '임의'로 붙여본 것이다.) 코비가 설명하고 싶은 건, 먼저 작은 돌들을 넣은 다음에 큰 돌들을 넣으면 제대로 넣을 수 없지만 큰 돌들을 먼저 넣고 작은 돌들을 그 사이에 넣으면 효과적으로 상자를 채울 수 있다는 점이다. 요지는, '소중한 것'을 먼저해야 한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난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걸 왜 꼭 다 채워야 하지?

뭔가를 효과적으로 해 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도 무엇인가를 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그런데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끊임없이 해치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불안은 영혼만 잠식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여백을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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