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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아이들을 위한 기도 - 김시천

by tirol 2007. 5. 15.

아이들을 위한 기도
                                      
김시천


당신이 이 세상을 있게 한 것처럼
아이들이 나를 그처럼 있게 해주소서
불러 있게 하지 마시고
내가 먼저 찾아가 아이들 앞에
겸허히 서게 해주소서
열을 가르치려는 욕심보다
하나를 바르게 가르치는 소박함을
알게 하소서
위선으로 아름답기보다는
진실로써 추하기를 차라리 바라오며
아이들의 앞에 서는 자 되기보다
아이들의 뒤에 서는 자 되기를
바라나이다
당신에게 바치는 기도보다도
아이들에게 바치는 사랑이 더 크게 해주시고
소리로 요란하지 않고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깨우쳐주소서
당신이 비를 내리는 일처럼
꽃밭에 물을 주는 마음을 일러주시고
아이들의 이름을 꽃처럼 가꾸는 기쁨을
남 몰래 키워가는 비밀 하나를
끝내 지키도록 해주소서
흙먼지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들을 결코 배반하지 않게 해주시고
그리고 마침내 다시 돌아와
그들 곁에 순한 바람으로
머물게 하소서
저 들판에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우리 또한 착하고 바르게 살고자 할 뿐입니다.
저 들판에 바람이 그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들의 믿음을 지키고자 할 뿐입니다.
 

/김시천, 청풍에 살던나무, 제3문학사, 1990/



* tirol's thought

스승의 날입니다.

가르치는 일은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로써 사랑을 전할 수 있지만 말만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해주고 전달할 것이냐가 아니라
먼저 그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 곁에 순한 바람으로 머무는 것입니다.

나의 아이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것도 그것입니다.
그 곁에 순한 바람으로 머무는 것,
저 들판에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
저 들판에 바람이 그치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의 믿음을 지키는 것,
그것들을 함께 나누고 배워가는 것,
그것입니다.

* source: http://for-munha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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