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어주는 남자

별을 보며 - 이성선

by tirol 2019. 10. 4.

별을 보며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이성선, 이성선 시전집, 시와시학사, 2005>

 

tirol's thought

 

몇 주 전 주일설교 시간에 전도사님께서 이 시를 읽어주셨다.

낭송은 묵독과 달라서 CM송의 한 구절처럼 귀에 확 와닿는 구절이 없으면 곧 잊혀지기 쉬운데

이 시의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라는 부분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맥락없이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로 시작하는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 가 떠오르기도 했다.)

 

가난하고 맑은 마음을 가진 시인이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진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취하지 않고서는 바라볼 수 없는 세상,

감도가 너무 높은 필름으로 찍은 사진같은.

 

시인은 2001년 그렇게 미안해하며 쳐다보던 별 가까이로 떠났지만

2019년 10월의 '이 세상'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라는 말조차 하기 힘들어하지 않을까?

 

'시 읽어주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잠 - 박준  (0) 2019.11.23
나는 내가 좋다 - 문태준  (0) 2019.11.16
내가 바라보는 - 이승희  (0) 2019.09.14
높새바람같이는 - 이영광  (2) 2019.08.31
處暑 - 문태준  (0) 2019.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