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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내가 바라보는 - 이승희

by tirol 2019. 9. 14.

내가 바라보는

 

이승희

 

 

처마 밑에 버려진 캔 맥주

깡통, 비 오는 날이면

밤새 목탁 소리로

울었다. 비워지고 버려져서 그렇게

맑게 울고 있다니.

버려진 감자 한 알

감나무 아래서 반쯤

썩어 곰팡이 피우다가

흙의 내부에 쓸쓸한 마음 전하더니

어느날, 그 자리에서 흰 꽃을 피웠다.

 

그렇게 버려진 것들의

쓸쓸함이

한 세상을 끌어가고 있다.

 

<이승희,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창비, 2006>

 

* tirol's thought

클라이맥스로만 이루어진 노래는 노래가 아니듯

일년 내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다면' 

사람들은 그런 얘길 하지도 않겠지.

버려진 것, 눈에 띄지 않는 것, 잊혀진 것들의

쓸쓸함이 끌어가는 한 세상.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던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울고 있는 그들의 눈물은

그들만의 것일까

이 세상의 것일까

나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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