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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북어 - 최승호

by tirol 2014. 4. 11.

북어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 source: http://munjang.or.kr/archives/188819


tirol's thought


시를 읽으며 

지친 표정으로 버스나 전철의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북어들처럼 

길게 가로놓인 손잡이에 매달린 사람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자갈처럼 죄다 딱딱해진 혀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

그런데 시의 막바지에 이르러

갑자기 북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커다랗게 입들 벌려 내게 소리쳤다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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