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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 - 신경림

by tirol 2014. 4. 8.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


신경림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어느날 나는 집을 나왔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이쯤은 꽃도 나무도 낯이 설겠지,

새소리도 짐승 울음소리도 귀에 설겠지,

짐을 풀고


찾아들어간 집이 너무 낯익어,

마주치는 사람들이 너무 익숙해.


사람 사는 곳

어디인들 크게 다르랴,

아내 닮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자식 닮은 사람들과 아웅다웅 싸우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매화꽃 피고 지기 어언 십년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기껏 떠났던 집으로

되돌아온 것은 아닐까.

아니 당초 집을 떠난 일이 없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다시,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나는 집을 나온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 source: http://munjang.or.kr/archives/189726



* tirol's thought

'먼데, 그 먼 데를 향하여' 떠나는 

시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낯익고 익숙한 것들을 붙잡고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불안해하고 악착을 떨고

살아가는 날들의 비루함.


나도,꿈에라도, 떠나보고 싶다

집을 나와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아주 먼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