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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물고기에게 배우다 - 맹문재

by tirol 2004. 11. 22.
물고기에게 배우다

맹문재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Tracked from http://blog.empas.com/engame64/2113128

* tirol's thought

시인은 물고기에게 배우고 나는 시에게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내가 약한 자라 믿으면서
'슬픔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았는지.
즐기지도 못하면서
얕은 발자국 몇개 낸 것 가지고
아무 것도 아닌 그것들 버리지 못하고
미련스럽게 뒤돌아보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어떻게 하면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들어설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