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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목도장 - 장석남

by tirol 2022. 1. 11.

목도장

 

장석남

 

 

서랍의 거미줄 아래
아버지의 목도장
이름 세 글자
인주를 찾아서 한번 종이에 찍어보니
문턱처럼 닳아진 성과 이름

이 도장으로 무엇을 하셨나
눈앞으로 뜨거운 것이 지나간다
이 흐린 나라를 하나 물려주는 일에 이름이 다 닳았으니
국경이 헐거워 자꾸만 넓어지는 이 나라를
나는 저녁 어스름이라고나 불러야 할까보다

어스름 귀퉁이에 아버지 흐린 이름을 붉게 찍어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표구가 되었으나
그림은 비어있네

 

 

* tirol's thought

 

아버지는 무슨 서류에 그렇게 도장을 찍고 다니셨기에 도장이 문턱처럼 닳았을까

헐거워지는 국경처럼 빛과 어둠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저녁 어스름이면 생각나는 것들

낙관도 찍고 표구도 되었는데 그림은 비어있다네.

아버지가 물려주신 흐린 나라는 빈 그림으로 내 앞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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