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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나의 본적 本籍 - 김종삼

by tirol 2021. 6. 27.

나의  본적 本籍

 

김종삼

 

 

나의 本籍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다.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의 本籍은 巨大한 溪谷이다.
나무 잎새다.
나의 本籍은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이다.
나의 本籍은 차원을 넘어다니지 못하는 독수리다.
나의 本籍은
몇 사람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敎會堂 한 모퉁이다.
나의 本籍은 人類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김종삼 저, 권명옥 엮음, 김종삼 전집, 나남, 2005>

 

 

* tirol's thought

 

본적(本籍)은 '호적(戶籍)'이 있는 곳. 어떤 사람이 태어나고 살던 곳.

2008년도에 호적제도가 폐지되어 이제는 '등록기준지'라는 말이 쓰인다고 한다.

나의 본적은 '충주시 용산동',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살던 곳, 내가 살았다가 떠나온 곳. 

시인의 본적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 거대한 계곡, 나뭇 잎새,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 차원을 넘어다니지 못하는 독수리, 몇 사람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교회당 한 모퉁이, 인류의 짚신, 맨발'

그 곳은 시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살던 곳,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던 곳, 최초의 인류가 발딛고 살던 곳.

거슬러 오르고 오르고 보면, 시인의 본적과 나의 본적이 다르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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