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적 本籍
김종삼
나의 本籍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다.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의 本籍은 巨大한 溪谷이다.
나무 잎새다.
나의 本籍은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이다.
나의 本籍은 차원을 넘어다니지 못하는 독수리다.
나의 本籍은
몇 사람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敎會堂 한 모퉁이다.
나의 本籍은 人類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김종삼 저, 권명옥 엮음, 김종삼 전집, 나남, 2005>
* tirol's thought
본적(本籍)은 '호적(戶籍)'이 있는 곳. 어떤 사람이 태어나고 살던 곳.
2008년도에 호적제도가 폐지되어 이제는 '등록기준지'라는 말이 쓰인다고 한다.
나의 본적은 '충주시 용산동',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살던 곳, 내가 살았다가 떠나온 곳.
시인의 본적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 거대한 계곡, 나뭇 잎새,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 차원을 넘어다니지 못하는 독수리, 몇 사람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교회당 한 모퉁이, 인류의 짚신, 맨발'
그 곳은 시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살던 곳,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던 곳, 최초의 인류가 발딛고 살던 곳.
거슬러 오르고 오르고 보면, 시인의 본적과 나의 본적이 다르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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