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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마음아, 네가 쉴 곳은 내 안에 없다 - 김기택

by tirol 2004. 12. 13.
마음아, 네가 쉴 곳은 내 안에 없다

김기택


누웠다 일어났다 먹다
신문을 보다 티브이를 보다 자다
하는 일밖에 할 일이 없을 때
몸은 하나의 정교한 물시계 같다
미세한 방광의 눈금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몸이 버린 물들이 고이는 것이 느껴진다
눈금이 모두 채워지면 방광에 종이 울린다
그때는 아무리 게으른 몸뚱이라도 정확하게 몸을 일으켜
오줌을 누어야 한다
물시계가 죽지 않도록 물을 잘 쏟아야 한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꼬박꼬박 먹고 마시는데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몸무게는 그대로다
그 동안 먹은 밥 마신 물 모두 어디로 갔나
대부분 배설물 분비물로 빠져나갔겠지만
머리카락이 되어 깍이고
손톱 발톱이 되어 깍이고 때가 되어 밀려나가고
기운을 써서 소모시켜 버렸겠지만
더러는 말이 되어 입에서 새어나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어 부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다가
끝내 기억만 남겨두고 다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슬픔이나 절망 분노 기쁨 같은 마음이 되었다가
표정이나 행동으로 울음으로 노래로 바뀌지 않았을까

방광의 눈금이 차올라 또 오줌을 누니
변기에서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른다
증기는 대기로 스며들어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오줌과 물과 온기와 냄새가 되어 나왔을 때
거기 마음도 함께 섞여나오지 않았을까
화내고 한숨 쉬고 소리치던 마음도
으르렁거리던 마음도
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중얼거리던 마음도
함께 흘러나와 변기와 대기 속으로 흩어지지 않았을까
아무리 편하게 몸을 누이고 있어도
마음은 쉬지 않고 뒤채고 끙끙거린다
맑은 잠속까지 꿈이 되어 들어와 흙탕물을 일으킨다
어쩌다 이 갑갑한 몸에 들어와 살게 되었을까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안쓰러워진다
마음도 털처럼 몸에 뿌리박고 산다는 것
내장이 소화시킨 것을 먹고 자라야 한다는 것
먹지 않으면 몸뚱어리처럼 굶어죽는다는 것
어려서는 아름답고 크고 자유로웠지만
어른이 되면 더러워지고 딱딱해져서
평생을 앓다가 죽는다는 것
그런 마음을 보면 불쌍한 몸보다도 더 불쌍해 보인다

/김기택 시집, 시집 바늘구멍 속의 폭풍, 문학과지성사/


* tirol's thought

십 년 전보다 10kg이 늘었다.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남은 것들은
배나 허벅지나 볼이나 마음 언저리에 붙어
출렁거린다.

아무리 허리를 구부려도
손바닥은 발에 닿지 않고
아무리 편하게 몸을 누이고 있어도
마음은 쉬지 않고 뒤채고 끙끙거린다


세월이 갈수록
비둔해지고
더러워지고 딱딱해져서
평생을 앓다가
죽을 마음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안쓰러워진다
그런 마음을 보면 불쌍한 몸보다도 더 불쌍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