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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마을회관, 접는 의자들 - 이윤학

by tirol 2004. 10. 20.
마을회관, 접는 의자들

이윤학


누가 건드려도
누구의 체중을 받들어도
엄살이 빠져나온다

누가 남의 엄살 따위를 사랑하겠는가
삐걱거리다 버려질 운명을 타고난
녹슨 접는 의자들을 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접는 의자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을 선전하지 않는다

접힌 의자들,
칼날이 만든 상처 속에
변치 않는 스펀지를 펼쳐놓고 있다

깨진 창을 찾아드는 햇볕
칠이 벗겨진 곳을,
집중 파고드는 녹을,
접힌 의자들은 무시하고 있다

누군가를 대신해
아파줄 능력을 가진 사람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몇 십 년, 펴진 채로
대신 엄살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회의 시간을 기다렸던가.

/이윤학,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문학과지성시인선 241, 2000/

* tirol's thought

접는 의자들 같은 것 말고
누가 남의 엄살 따위를 사랑하겠는가
친구도, 가족도, 그 누구도.
누군가를 대신해 아파줄 능력을 가진 사람 이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를 대신해 삐그덕거리며 엄살을 피워주는 의자여,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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