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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낙엽 - 이재무

by tirol 2004. 10. 27.
낙엽

이재무


시를 지망하는 학생이 보내온
시 한 편이 나를 울린다
세 행 짜리 짧은 시가 오늘 밤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한 가지에 나서 자라는 동안
만나지 못하더니 낙엽 되어 비로소
바닥에 한몸으로 포개져 있다"

그렇구나 우리 지척에 살면서도
전화로만 안부 챙기고 만나지 못하다가
누군가의 부음이 오고 경황 중에 달려가서야
만나는구나 잠시잠깐 쓸쓸히 그렇게 만나는구나
죽음만이 떨어져 멀어진 얼굴들 불러모으는구나


* tirol's thought

가을이 되면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부음의 빈도가 늘었다.
무례한 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결혼식에만 시즌이 있는 게 아니라
장례식에도 시즌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경험 상으로 볼 때 계절이 바뀌는 봄 가을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한여름이나 한 겨울에 비해 훨씬 많은 것 같다.
계절이 바뀌면서 무심결에 생을 붙잡고 있었던 긴장의 끈을 놓아 버리기 때문일까.

요즘은 문상을 가도 오래도록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시거나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문상을 가서 마시는 소주는 쉽게 취하지 않는다.
귓가에 버스럭거리는 쓸쓸한 낙엽소리 때문인가.

잠시잠깐 쓸쓸히 그렇게 우리를 만나게 하는,
떨어져 멀어진 얼굴들을 불러모으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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