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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떨림 - 강미정

by tirol 2003. 7. 22.
떨림
-그대에게-

강미정


젖은 수건 속에 오이씨를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 두었죠
촉 나셨는지 보아라,
싸여진 수건을 조심조심 펼치면
볼록하게 부푼 오이씨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입을 반쯤만 열고 있었죠
촉 나시려고 파르르 몸 떠는 것 같아서
촉 보려는 내 마음은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조심조심 수건을 펼쳤던
저의 손은 또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촉 나셨는지 보아라,
아부지 촉 아직 안 나왔슴더,
빛이 들지 않게 얼른 덮어 둬라,
빛을 담기 위해선 어둠도 담아야 한다는 것을
한참 뒤 나중에야 알았지만요
그때는 빨리 촉 나시지 않는 일이
자꾸만 펼쳐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오래 들여다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촉 날 때까지 걱정스레 내 마음을 떨었죠

/시와 현장 2003년 봄호/

* tirol's thought

콩나물국 끓일 때 자꾸 뚜껑 열면 비린내 나서 못쓴다.
밥 뜸들일 때도 그렇고
사랑 할 때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데도 말이다.
그럴 수록 자꾸 열어보고 싶은 마음.

어느날 문득 그대에게 이르는 길,
멀어지는 것 같은 두려움.
자꾸만 열어보려했던 때문인 것 같아서
오래 들여다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촉 날 때까지 걱정스레 내 마음 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