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정림사지 5층 석탑
황동규
성긴 눈발 빗방울로 뿌리다
다시 눈발 되어 날리는
눈발 날리다 다시 빗방울로 흩뿌리는
그런 지워버리고 싶은 날.
텅 빈 뜨락에 혼자 있는 그대
크도 작도, 늙도 젊도 않게
속 쓰리지도 않게
뒤로 돌아가 보아도
어디 따로 감춘 열(熱)도 없이
눈 비 속에서 잊힌 듯 숨쉬고 있다.
그 들숨 날숨 안에 들면
사는 일이 온통 성겨진다.
'춥니?'
'아니.'
'발끝까지 젖었는데?'
'어깨가 벌써 마르고 있어.'
'조금 전에 우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네 눈으로 본 걸 옮기지.'
/문학사상 2003년 4월호/
황동규
성긴 눈발 빗방울로 뿌리다
다시 눈발 되어 날리는
눈발 날리다 다시 빗방울로 흩뿌리는
그런 지워버리고 싶은 날.
텅 빈 뜨락에 혼자 있는 그대
크도 작도, 늙도 젊도 않게
속 쓰리지도 않게
뒤로 돌아가 보아도
어디 따로 감춘 열(熱)도 없이
눈 비 속에서 잊힌 듯 숨쉬고 있다.
그 들숨 날숨 안에 들면
사는 일이 온통 성겨진다.
'춥니?'
'아니.'
'발끝까지 젖었는데?'
'어깨가 벌써 마르고 있어.'
'조금 전에 우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네 눈으로 본 걸 옮기지.'
/문학사상 2003년 4월호/
* tirol's thought
'네 눈으로 본 걸 옮기지'
소문과 추측과 짐작과 억지 투성이의 세상을 향해
석탑이 그윽하게 하는 말이 참 근사하다.
'네 눈으로 본 걸 옮기지'
소문과 추측과 짐작과 억지 투성이의 세상을 향해
석탑이 그윽하게 하는 말이 참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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