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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이런 사람 - 강인한

by tirol 2005. 10. 11.
이런 사람

강인한


아내가 달달 볶아도
끝끝내 운전면허를 따지 않는 사람
도시락 가방을 들고
고집스레 시내버스로 출근을 하며
휴대폰을 주어도 가지지 않는 사람
일찍이 기사보다 광고가 많은 신문을 끊고
티브이 연속극을 끊어버린 사람
시월 유신 때 한국문인협회를
팽개쳐버리고
국제 팬클럽도
들었다가 팽개쳐버린 사람
엿도 안 먹고 껌도 안 씹으면서
오래 전 신경성 위장병에서 만성 위염으로
다시 위궤양으로 승진한 사람
그래서 술도 끊고
싹둑 신용카드도 끊어버린 사람
아 그러나 한가지
대한민국 교육세를 남보다 많이 내려고
하루 한 갑씩의
담배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

/강인한, 푸른 심연, 고요아침, 2005/

* tirol's thought

얼마전 (회사에는 나보다 먼저들어온 입사 선배이지만) 대학 후배이자 같은 팀 동료이기도 한 L차장과 술을 먹다가 우연히 나의 '좌절 문학 청년기'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다음 날 L차장으로부터 장인 어른의 시집을 한 권 선물로 받았다. 사내 커플인 L차장 내외와는 결혼 전 연애시절 어울려 함께 술도 많이 마셨는데 그러고 보니 얼핏 장인 어른 될 분이 글을 쓰신다는 얘길 들었던 것도 같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며 시를 쓰셨다는 후배 장인 어른의 시는 어렵지 않고 매끄럽게 잘 읽혔다. 해설을 쓴 나희덕 시인의 말대로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를 쓰시는 분인 것 같다.
시집 중에서 너무 무겁지 않고 재미난 시를 한편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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