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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노동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 - 베르톨트 브레히트

by tirol 2022. 8. 12.

노동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

베르톨트 브레히트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지 압니다!
우리가 아플 때마다 사람들은 선생님이
우리를 낫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선생님께선
사람들의 돈으로 만들어진 근사한 학교에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법을 배우셨다고
또 선생님의 지식을 위해 돈을 쓰셨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저희를 낫게 하실 수 있겠지요.

저희를 치료하실 수 있나요?

누더기 옷이 벗겨진 채
선생님 앞에 서면
선생님은 저희의 벗은 몸을 구석구석 진찰하십니다.
우리가 아픈 이유를 찾으시려면
누더기를 한번 흘끗 보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우리의 몸이나 옷이나
같은 이유 때문에 닳으니까요.

제 어깨가 아픈 것이
습기 때문이라고 그러셨지요. 그런데
저희 집 벽에 생기는 얼룩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말씀해 주세요.
그 습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거지요?

너무 많은 노동과 너무 적은 음식이
우리를 약하고 마르게 만듭니다.
선생님은 처방전을 내주셨지요.
몸무게를 늘려라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갈대에게
젖지 말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선생님께선 저희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내실 거죠?
선생님 댁의 카페트가 보이네요.
오천 번 쯤 진료하면
하나 살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마도 선생님은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시겠죠. 저희 집 벽
습기찬 얼룩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베르톨트 브레히트, 스벤보르 시편, 1939>
* source: http://demo.egloos.com/m/2396422

 

[독일 문학] 베르톨트 브레히트, 「노동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

노동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 베르톨트 브레히트, 『스벤보르 시편』, 1939.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지 압니다! 우리가 아플 때마다 사람들은 선생님이 우리를 낫게 만들 수 있는 사람

demo.egloos.com

tirol’s thought

몇일 전 페이스북에서 이 시를 읽었다.
이번 폭우로 인한 피해의 재발방지책이랍시고 내놓은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힌 건 나만이 아니었던가 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힘을 얻게 되면 바보가 되는 걸까
무식하지만 자신의 욕망에 간절한 바보들이 결국 힘을 얻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얘기를 ‘해결책’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할 수 있을까
시 속의 환자에게 ’몸무게를 늘려라‘라고 처방전을 내는 의사와 무엇이 다른가
’갈대에게 젖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 잠깐…가만있어보자
나는 환자이기만 했었나
갈대 같은 누군가에게 젖지 말라고 얘기한 적은 없었나
습기찬 얼룩처럼 그게 내 책임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나
이를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