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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11월의 나무 - 황지우

by tirol 2022. 11. 18.

11월의 나무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 tirol's thought

 

겨울이 머지 않은 11월

머리를 득득 긁는 사람 같이 서 있는 나무

그 나무처럼 난감한 나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못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겨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나무처럼

아, 나도 생이 마구 가렵다

우물쭈물하다 보니 해지는 저녁 어스름

12월이, 겨울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