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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낙타 - 신경림

by tirol 2006. 8. 18.
낙타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tirol's thought

저승길에 낙타를 타고 가고픈 나는
아마도 세상사의 온갖 것들을 경험한 사람일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가슴에 깊이 깊이 담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 그가 다시 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면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사는 낙타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엾은 사람의 길동무 되어
등에 업고 돌아오겠다고 한다.

사연 많은 인생아 서글퍼 마시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사는 낙타처럼 사는 일이 어디 쉬운가.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일은 얼마나 가엾고 어리석은가.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낙타를 타고 가나 낙타가 되어 가나
언젠가는 돌아갈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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