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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나의 시의 발전사 - 김혜순

by tirol 2004. 12. 7.
나의 시의 발전사

김혜순


줄 것이 없어 나는 자식에게 별명을 선물로 준다
__가시야, 실파리야, 거머리야
자식은 그런 가녀린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없다고 투덜거린다.

그 다음 나는 좀 더 예술적인 선물을 준다.
__피아노를 울려라, 딩동댕. 풀피리를 불어라, 삘릴리. 작은북을 울려라 통통통
자식은 나는 당신의 악기가 아니라고 투덜거린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딱딱하고 교훈적인 별명을 내 자식에게 수여한다.
__무솔리니! 흐루시초프! 마오쩌둥!

자식은 다시 그런 갖고 놀 수 없는 것은 곰팡내 나는 것은 싫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이제 꿇어 엎드려 싱싱한 자연을 상납한다.
__바람아? 그럼 파도는? 그럼 바다, 하늘, 그럼 자유는 어떤지요?

화가 난 아이는 그 따위 먹을 수 없는 것은 싫다고 그런다.

나는 정말 지쳐서 옷을 벗어준다. 머리채를 잘라준다. 신발도 벗어준다. 손톱쯤 잘라준다. 눈썹도 조금 뽑아준다.
그러자 자식은 그 따위 가소로운 혓바닥 하나쯤 빼줘도 아쉽지는 않을 텐데 하면서 저 멀리로 떠나버린다.


* tirol's thought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통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너무 바쁘거나 무심해서 알아채지 못할 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은 그 안에 닮은 꼴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인은 그것을 알아채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아닐까?
직유와 은유와 상징과 역설로 이것과 저것을 엮어보여주는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
그저 뜻없어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별자리를 찾아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시인이 아닐까?

이 시는 얼마 전 올렸던 나희덕 시인의 '소풍'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또 완전히 다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시인과 시 사이의 관계이기도 하다. 둘을 다르지만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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