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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길 - 김기림

by tirol 2010. 3. 25.

 길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너머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 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 source: http://www.qtessay.or.kr/n34a11.htm

* tirol's thought

 이 글은 1936년 <조광朝光>이란 잡지에 처음 발표되었다가 나중에 수필집 '바다와 육체' 에 실린 김기림의  유명한 수필이다.
 그런데 마치 시처럼 읽힌다.
 하긴 시면 어떻고 수필이면 어떤가.
 
 어둠이 내리던 저녁 무렵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던 때가 떠오른다.
 
 그 때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게
 어둠이었다는 걸
 이제사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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