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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성묘 엄마 가신 지 십년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나가 엄마 무덤가에 한참 앉아 있다 왔다 십년 전 엄마 아프실 때도 그랬다 둘이 이른 저녁을 해 먹고 엄마는 티브이를 보다가 졸고 나는 엄마 옆에 그냥 앉아 있다 왔다 오늘도 그냥 그렇게 앉아 티브이 대신 산소 앞 풍경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왔다 기댈 곳 없는 등이 문득 아프기도 했다 2024. 6. 10.
사랑과 평화 - 이문재 사랑과 평화이문재사람이 만든 책보다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사람이 만든 노래보다노래가 만든 사람이 더 많다사람이 만든 길보다길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사랑으로 가는 길은 오직 사랑뿐사랑만이 사랑으로 갈 수 있다그래야 사람이 만든 사랑보다사랑이 만든 사람이 더 많아진다평화로 가는 길 또한 오직 평화뿐평화만이 평화로 갈 수 있다평화만이 평화를 만들 수 있다그래야 사람이 만든 평화보다평화가 만든 사람이 더 많아진다이 또한 오래된 일이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라는 문장은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채 널리 알려져 있다.* tirol's thought 사람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책과 노래와 길과 사랑과 평화 그리고...사람이 만들어져 가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내가 피조물.. 2024. 2. 29.
거룩한 식사 - 황지우 거룩한 식사황지우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먹는 일의 거룩함이여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풀어진 뒷머리를 보라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tirol's thought내 힘으로 숟가락을 들 수 있게 된 때부터 오늘까지 밥을 안먹고 보낸 날이 몇 일이나 될까숟가락을 들어 몸에 한세상 떠넣어준 그 많은 날들 중에내가 마주 앉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되고또 혼자 밥 .. 2024. 2. 23.
2024. 1. 17. 주황발 무덤새 https://m.youtube.com/playlist?list=PLcl1d3utG2BygIM9F1nywD6H0Ea501gx2 주황발무덤새 www.youtube.com호주 원주민 가수 구루물 Gurrumul이 부르는 노래.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짐작도 안가지만 자꾸 듣게되는 신기한  경험. 2024. 1. 17.
백일홍 이걸 뭐라 불러야 할까 꽃이라 불러야 할까 꽃이라 부를 수 있을까 활짝 핀 꽃만 꽃인가 시든 꽃은 꽃인가 꽃이 아닌가 어디서부터가 꽃이고 어디서부터가 꽃이 아닌가 꽃인지 아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백일홍이 이만큼 남은 지금은 가을인가 아닌가 어디서부터가 가을이고 어디까지가 가을인가 2023. 10. 11.
개 발자국 - 김광규 개 발자국 김광규 온몸이 누런 털로 덮이고 슬픈 눈에 코끝이 까맣게 생긴 녀석. 뒤꼍 개집에서 봄여름 가을 나고, 겨울에는 차고 한구석에서 뒷발로 귀를 털면서 나이를 먹었지. 늘그막엔 주인집 거실 바닥에서 코를 골며 낮잠을 자기도 했다. 놈은 이 세상에 태어나 열여덟 해를 혼자 살았다. 물론 극진하게 보살펴주는 주인 내외와 딸이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고무친의 외톨이 아니었나. 천둥 벼락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놈이 위층 서재까지 뛰어 올라와 주인의 책상 아래 몸을 숨기기도 했다. 겁이 났던 모양이다. 놈을 야단치고 밖으로 쫓아내는 악역을 맡은 바깥주인도 이럴 때는 못 본 척 그대로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었다. 가족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준 셈이었다. 이렇게 정든 놈이 몸뚱이만 남겨놓고 .. 2023.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