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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식은 밥 - 함성호

by tirol 2005. 2. 22.
식은 밥

함성호


어머니 밥 잡수신다
시래기국에 찬밥덩이 던져
넣어 후룩후룩 얼른 얼른
젖은 행주처럼 조그맣게 쭈그리고 앉아
목 퀭한 환자복의 아들이 남긴
식은 밥 다아 잡수신다
어머니 마른 가슴으로 먼 하늘 보신다
삭풍에 거슬러 살 날리던,
유리의 땅은 바닷바람 같은 먼 나라
내 목숨 같은 먼 나라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한 계절을 씻어내리는 비
두만강 물소리에 밥 말아
어머니 이른 아침밥 드신다
붉은 흙 퍽퍽 가슴에 채우신다


* tirol's thought

지난 여름, 어머니가 갑작스런 현기증을 호소하셔서 이른 새벽 응급실에 갔던 적이 있다. 그때 서너시간 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바라보던 응급실의 풍경들이 떠오른다.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들은 증세도 다양하다. 어딘가가 부러진 사람, 갑작스런 복통을 호소하는 사람, 너무 술이 취해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 지병이 갑작스레 악화되어 온 사람...응급실 풍경 중에서 내가 눈여겨 본 것은 환자들의 보호자였다. 환자들의 증세 만큼이나 보호자의 종류도 다양했다. 어머니, 아버지, 아내, 남편, 형제, 자매, 친구...보호자가 없이 혼자 온 사람도 있었다. (그이에게 보호자가 언제 오냐고 간호사는 끊임없이 채근을 했다. 보호자가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다행이도 그이는 누나가 곧 올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런 환자와 보호자의 풍경 중에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머리가 흰 늙은 어머니와 나이 많은 아들 환자의 풍경이었다. 그 환자는 아내가 없을까? 자식은? 그 새벽, 아픈 아들 옆에서 보호자로서 힘들게 앉아있던 그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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