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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즐거운 편지 - 황동규

by tirol 2005. 3. 4.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현대문학1958/


* tirol's thought

가끔 골짜기에 거세게 퍼붓는 눈을 보면 정녕 그치지 않을 것 처럼 생각될 때도 있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 눈이 그치고 꽃이 피었다고 해서 또다시 눈이 퍼붓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나도 우리가 사는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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