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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하관 - 박목월

by tirol 2005. 2. 4.
하관(下棺)

박목월


棺을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兄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


* tirol's thought

우연히 찾은 이 시를 읽다가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떠올려 본다.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에 있음에 두려워하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갔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같은 나뭇가지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 세계에서 만나 볼 나는
불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生死路隱
此矣有阿米次伊遣
吾隱去內如辭叱都
毛如云遣去內尼叱古
於內秋察早隱風未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一等隱枝良出古
去奴隱處毛冬乎丁
阿也彌陀刹良逢乎吾
道修良待是古如


머리맡의 성경과 미타찰의 거리가 뭐 대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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