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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포장마차는 나 때문에 - 권혁웅

by tirol 2019. 7. 13.

포장마차는 나 때문에

 

권혁웅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포장마차 가본 게 언제인가

포장마차는 나 때문에 견디고 있을 것이다

크기에 빗댄다면

대합탕 옆에 놓인 소줏잔 같을 것이다

방점처럼, 사랑하는 이 옆에서

그이를 중요한 사람으로 만드는

바로 그 마음처럼

참이슬은 조각난 조개의 조변석개를 안타까워할 것이다

천막을 들추고 들어가는 들큼한 취객의 등이여,

당신도 오래 견딘 것인가

소주병의 푸른빛이 비상구로 보이는가

옆을 힐끗거리며

나는 일편담심 오리지널이야,

프레쉬라니, 저렇게 푸르다니, 풋, 이러면서

그리움에도 등급을 매기는 나라가

저 새벽의 천변에는 희미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지만 혼자서는 끝내 가지 않을

혼자라서 끝내 갈 수 없는 나라가

저 피안에서 취객의 등처럼 깜빡이고 있을 것이다

 

<권혁웅,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창비, 2013>

 

* tirol's thought

예전에도 술을 잘 마셨던 건 아니지만

점점 주량이 줄어드는 것 같다

건강검진 종합소견 페이지가 빡빡해져 가는 만큼

술을 덜 마셔야 할 이유는 늘어간다

그래도 기억과 습관은 바꾸기 어려운 법

마시지 말아야 할 걸 알면서도

잘 마시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천막을 들추고 푸른빛의 비상구를 향한다

이제는 좀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그리움으로 남겨두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방점을 지우듯이

좀 더 담백하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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