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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by tirol 2005. 6. 1.
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오규원 시집, 이땅에 씌여지는 서정시/


* tirol's thought

정말 우스운 건 팬티 걱정이 아니라, 겁쟁이가 되어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눈동자를 굴리는 '나'와, 그런 데 신경을 쓰는 걸 우스워하는 '나'가 모두 내 안에서 어울렁 더울렁 치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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