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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by tirol 2001. 9. 13.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 태양보다 냉철한 뭇 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시집 '황금빛 모서리'(문학과 지성사)에서


* tirol's thought

1995년께던가? '안암문예창작강좌'라는 모임에 초청 시인으로 왔던 김중식을 기억한다. '백수'로서 시쓰기...친구들과의 폭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하여간 나는 그가 멋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가 친구들과 술마실 때 썼다는 '가열차게 마시고, 장렬하게 전사하여, 찬란하게 부활하자'라는 구호를 그 후로 줄곳 써먹고 있는 중이다.(가깝게는 지난 주에도...)
"포기한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되고 싶은 욕망, 그래서 "자유롭고" 싶은...그러나 "포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노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