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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윤사월 - 박목월

by tirol 2021. 4. 11.

윤사월(閏四月)

박목월


송홧(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직이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박목월, 한국현대시문학대계 18, 지식산업사, 1982>

 

 

tirol's thought

 

계절마다 나도 모르게 떠올리게 되는 시가 있다. 해마다 어느 가을 저녁이 되면 문득 김춘수의 '가을 저녁의 시'가 생각나고, 해마다 어느 봄날이면 문득 이 시를 떠올리고, 중얼거린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이 시는 시인이 1946년 5월, 문예지 '상아탑'에 처음 발표했다고 하는데, 윤사월이 들었던 해를 찾아보니 1946년에는 윤달이 없었고 1944년에 윤사월이 있었다.  시인의 경험을 기초로 두어해 전 써두었던 시를 1946년에 발표한 것이거나 아니면 상상으로 쓴 것이리라. 내 짐작으로는  윤사월이 들었던 1944년 봄, 시인이 어느 산골짝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풍경을 시로 옮긴 게 아닐까 싶은데 확인할 길은 없다. 

 

1944년 이후로는 63년, 74년, 82년, 01년에 윤사월이 들었고 2020년에 윤사월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2050년까지 윤사월은 없다. (직접 계산하기는 어려워서 구글로 찾아봤는데 2050년 이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윤달은 양력과 음력의 오차를 보정하기 위한 장치로 2-3년에 한번씩 윤달이 있는데 어떤 달에 윤달을 넣을지를 결정하는 방식은 '무중치윤법'이라고 해서 좀 복잡하다.) 작년의 음력을 양력 날짜로 확인해 보면 5월 23일부터 윤사월이 시작되는데 5월 말이면 봄이 아니라 초여름에 가까운 날씨였겠다. 이런 계산을 작년에 해봤더라면 앞으로 30년간 돌아오지 않을 윤사월이었던 5월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을까?

 

이제는 할머니가 되셨을, '산직이 외딴 집/ 눈먼 처녀'는 한 동안 오지 않을 작년 윤사월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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