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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육교를 건너며 - 김정환

by tirol 2014. 1. 27.

육교를 건너며


김정환



육교를 건너며

나는 이렇게 사는 세상의

끝이 있음을 믿는다

내 발바닥 밑에서 육교는 후들거리고

육교를 건너며 오늘도 이렇게 못다한 마음으로 

나의 이 살아있음이 언젠가는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고

또 사랑하는 것이다

육교는 지금도 내 발바닥 밑에서 몸을 떤다

견딘다는 것은 오로지 마음 떨리는 일

끝이 있음으로 해서

완성됨이 있음으로 해서

오늘, 세상의 이 고통은 모두 아름답다

지는 해처럼

후들거리는 육교를 건너며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의심하며 살 것이며

내일도 후회 없이

맡겨진 삶의 소름 떠는 잔칫밤을 치를 것이다

아아 흔들리는 육교를 건너며

나는 오늘도, 이렇게 저질러진 세상의

끝이 있음을 나는 믿는다

나의 지치고 보잘것없는 이 발걸음들이

끝남으로, 완성될 때까지

나는 언제나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tirol's thought


나도 시인처럼 육교를 건널 때 

' 내 발바닥 밑에서 몸을 떠는' 육교를 느낀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난간 쪽 가까이로 걷지 못하고

가능한 가운데 쪽을 택해 '후둘거리는 육교'를 건넌다,

그 불안함과 울렁거림이

이 세상의 사는 일과 닮아있음을 

시를 읽으면서 깨닫는다.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갈' 다짐으로 시를 마친다.

앞에서 선서를 선창하는 사람을 따라하듯

나도 같은 말을 따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는데

말은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입 안에서 떠돈다.

다른 사람들이 건너는 육교도 지금 내가 건너는 이 육교처럼 

심하게 흔들릴까까?

이 육교만 유난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만으로

이 육교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