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어주는 남자

애수의 소야곡 - 진이정

by tirol 2004. 11. 8.
애수의 소야곡

진이정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남인수와 고복수의 팬이던 아버지는
내 사춘기의 송창식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나는 또 누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부턴 열린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이 순간까지도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그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즐기려고 애써 왔다
허나 당신을 이해할 것만 같은
밤이 자주 찾아오기에
나는 두렵다
나는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이해한다, 라고 똑 떨어지게 말할 날이
백발처럼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추억이던 왜정 때의 카페와 나의 카페는
그 철자만이 일치할 뿐,
그러나 그런 중첩마저, 요즘의 내겐 소중히 여겨진다
아버지의 카바레와 나의 재즈 바는
그 무대만이 함께 휘황할 뿐
그러나 나는 사교춤을 출 줄 알았던
당신의 바람기마저도 존중하게 되었다
어쩌다 알게 되었지만, <바>라는 건 딱딱한 막대기일 따름,
난 그 막대기 너머, 저어 피안으로 가기를 꿈꾸어왔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당신의 꿈을 알지 못한다
우린 색소폰의 흐느적임과 장밋빛 무대만을 공유할 뿐,
나는 그의 꿈을 끝내 넘겨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 나는 어쩔 수 없어
꿈이 빠져버린 그의 애창곡이나 듣고 있을 뿐,
허나 난 온몸으로 아,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아
남인수와 송창식을 서둘러 화해시킬 길을 찾는다
아니 억지로, 억지로 화해시키려 한다
가부장의 달빛만 괴기한, 이 이승의 쓸쓸한 밤에
아버지를 이해하는 게 왜 이리 두려운 일인지
잃어버린 그의 꿈이 왜 이리 버거운 짐인지


* tirol's thought

다른 시인의 글을 통해 이름을 익힌 시인의 시를 찾아 읽는다.
내가 둔해서 그런지 딱히 유별난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생각해보기는 이 시인은 자신의 시보다도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빛나는 시인이 아닐런지.

요즘 EBS에서 방영하는 '명동백작'을 가끔보는데
박인환과 김수영의 대조적인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문학적 성취에 있어서는 김수영이 앞설지 모르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문우들에게 박인환은
김수영보다 훨씬 살갑고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지는 인물이었으리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주정을 들어주고.
감상적이면 어떤가, 때로 유치하면 어떤가.
문학사에 이름이 남지 않은 들 어떤가.
글이 인간을 따라와야지
인간이 글에 목을 매는 건 서글픈 일이 아닌가.

p.s
글을 다 쓰고 시인의 약력을 찾아보니 진이정 시인은 1993년 11월 서른 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사인은 지병인 폐결핵. 유고시집으로『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