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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달의 눈물 - 함민복

by tirol 2004. 11. 3.
달의 눈물

함민복


금호동 산동네의 밤이 깊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노루들의 잠자리나 되었을 법한
산속으로 머리를 눕히러 찾아드는 곳
힘들여 올라왔던 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 더럽히고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숨찬 산중턱에 살고 있는 나보다
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많아
아직 잠 못 이룬 사람들 많아
하수도 물소리
골목길 따라 흘러내린다
전봇대 굵기만한 도랑을 덮은
쇠철망 틈새로 들려오는
하수도 물소리
누가 때늦은 목욕을 했는지
제법 소리가 커지기도 하며
산동네의 삶처럼 경사가 져
썩은내 풍길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또 비린내가 좀 나면 어떠랴
그게 사람 살아가는 증표일진대
이곳 삶의 동맥처럼
새벽까지 끊기지 않고
흐르는
하수도 물소리
물소리 듣는 것은 즐겁다
쇠철망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면
달의 눈물
하수도 물소리에 가슴이 젖는다


/함민복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작과비평/


* tirol's thought

어제 저녁엔 회사 앞 포장마차에서
오랫만에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숨찬 산중턱에 살고 있는'
우리 신세를 안주 삼아 마시다 보니 쉽게 취했다.

달동네의 '하수도 물소리'를
'달의 눈물'로 읽는 시인의 눈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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