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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산산조각 - 정호승

by tirol 2019. 6. 8.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정호승,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 2004>

 

* tirol's thought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내게

부처님이 우연을 가장하여 보내 주신 시가 아닐까.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고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머리로 몰랐던 건 아닌데, 그런데

머리로만 아는 걸 안다고 해야할까

불쌍한 내 머리

부서져야하리 산산조각이 나야하리

그런데 한쪽 팔이 어디로 간거야 다리는 어디로 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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