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정호승,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 2004>
* tirol's thought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내게
부처님이 우연을 가장하여 보내 주신 시가 아닐까.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고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머리로 몰랐던 건 아닌데, 그런데
머리로만 아는 걸 안다고 해야할까
불쌍한 내 머리
부서져야하리 산산조각이 나야하리
그런데 한쪽 팔이 어디로 간거야 다리는 어디로 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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