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굽다
김혜순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냈을까
무표정한 저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하늘 한구석 별자리마다 쪼그리고 앉아
별들을 가마에서 구워내는 분 계시겠지만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 지상에 내리겠지만
물이 쏟아진 듯 몰려가는
땅속은 너무나 깊어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 하나씩 깃들어 있나 보다
저렇듯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 얼굴을 구워내고 있었으니
모든 얼굴은 뜨거운 속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
* 김혜순(1955~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1979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등이 있다.
**source: http://munjang.or.kr/archives/254995
tirol's thought
붉은 흙 가면을 구워낼
우리 속 불가마의 불이 쇠잔해지면
우리는 진흙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불가마의 연료는 무엇일까
본능? 희망? 습관? 분노? 오기?
사람마다 때마다 다르지 않을까
희망으로 불가마를 땐 날은
분노나 습관으로 땐 날보다
붉은 흙 가면의 때깔이
더 낫지 않을까?
오늘 나는 어떤 연료로
나의 붉은 흙 가면을 구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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