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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별을 굽다 - 김혜순

by tirol 2015. 4. 2.

별을 굽다


김혜순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냈을까

 

 

무표정한 저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하늘 한구석 별자리마다 쪼그리고 앉아

별들을 가마에서 구워내는 분 계시겠지만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 지상에 내리겠지만

물이 쏟아진 듯 몰려가는

땅속은 너무나 깊어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 하나씩 깃들어 있나 보다

 

 

저렇듯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 얼굴을 구워내고 있었으니

모든 얼굴은 뜨거운 속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




* 김혜순(1955~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1979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등이 있다.


**source: http://munjang.or.kr/archives/254995



tirol's thought


붉은 흙 가면을 구워낼 

우리 속 불가마의 불이 쇠잔해지면 

우리는 진흙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불가마의 연료는 무엇일까

본능? 희망? 습관? 분노? 오기? 


사람마다 때마다 다르지 않을까

희망으로 불가마를 땐 날은 

분노나 습관으로 땐 날보다

붉은 흙 가면의 때깔이 

더 낫지 않을까?


오늘 나는 어떤 연료로

나의 붉은 흙 가면을 구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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