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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의자 - 이정록

by tirol 2015. 10. 23.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조흔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tirol's thought


어제 저녁 건축 관련 강의 말미에 이 시를 읽었는데, 

오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다시 이 시를 만났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고

안도현 시인의 '연탄'이란 시 생각도 나고

몇 번을 읽는 데 괜히 마음이 울렁댄다.

나는 누구의 의자였을까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어디에 있을까

세상에 별거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게 뭔가

누군가 내어준 의자에 기대 숨을 돌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의자가 되어주기도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주억거리다가

'싸우지 말고 살아라'는 말에 눈이 멈춘다.

내 의자 네 의자, 이거냐 저거냐, 지금이냐 나중이냐 따지지 말고

'싸우지 말고' 살 일이다.

그냥 그렇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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