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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눈물의 원료 - 이현승

by tirol 2014. 10. 28.

눈물의 원료


이현승



우리는 언제나 두 번 놀란다

한 번은 갑작스런 부고 때문에

또 한 번은 너무나 완강한 영정 때문에

다 탄 향의 재처럼 가뭇가뭇한 눈을 씻고

우리는 산적과 편육과 장국으로 차려진 상을 받으며

사나운 곡소리와 눈물을 만드는 재료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의 얼굴이란 웃는 표정과 우는 표정이 비슷하고

가리는 울음과 드러내는 웃음이 반반 섞이고 나면

알 수 없다 알 수 없이 망연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호흡은 들숨일까 날숨일까

마지막 날숨을 탄식이라고 볼 수 있을까

들숨을 결심할 때의 그것으로 볼 수 있을까

남의 밥그릇에 밥을 퍼줄 때만 우리는 잠시 초연해질 수 있다

밥통을 열어젖힐 때의 훈김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을 본다


월간『현대시』2010년 3월호



* tirol's thought


어제 별세한 신해철씨를 기억하며 페친이 담벼락에 올려놓은 시를 읽는다. 

빈소에 앉아 멍하니 밥상을 받는 심정으로 

뉴스와 페북과 트위터에 올라온 부고기사를 읽다가 

'밥통을 열어젖힐 때의 훈김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저기에서 와서 저기로 돌아갔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여전히 내 곁에 있다고, 나의 날숨과 들숨 속에 스며들었다고 말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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