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한겨레신문사, 2001
>>박노자 교수의 글은 주로 한겨레를 통해서 읽고 있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한국학 교수라는 프로필과 그의 이름을 보고 나는 늙스구레한 아주머니 교수를 연상했었다. 그런데, 그 늙스구레한 할머니가 쓰는 글이 어울리지 않게 과격하다 싶긴 했다. 기억나는 이야기들은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한국 대학의 교원 임용 방식이라던가 조교들이 받는 불합리한 대우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수렵에 관한 비판 등이다. (그 이야기들은 대개 이 책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박노자 교수는 늙스구레 하지도 않았고 아주머니도 아니었다. 눈빛이 맑을 것 같은 러시아 출신의 젊은 사학자였다. 귀화 한국인으로서 그가 까발리는 한국사회의 모습은 쉽게 부정하기 힘든 우리의 부끄러움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신의 상황에 쉽게 익숙해지고 또 의도적으로 익숙함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런 탓에 우리 스스로 쉽게 짚어내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박노자 교수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그 비판이 국외자의 무책임하고 선정적인 문제제기로 빠져들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때로는 드러나게 또는 드러나지 않게 박노자 교수는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독자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그도 자신의 이러한 비판이 국외자의 불평 정도로 읽히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듯 하다.
귀화 한국인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사실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붙여졌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심지어는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귀화 한국인인 박노자 교수를 정말 진심으로 '우리들' 속에 받아들여줄 수 있겠는가?
박노자 교수가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박노자 교수의 글은 주로 한겨레를 통해서 읽고 있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한국학 교수라는 프로필과 그의 이름을 보고 나는 늙스구레한 아주머니 교수를 연상했었다. 그런데, 그 늙스구레한 할머니가 쓰는 글이 어울리지 않게 과격하다 싶긴 했다. 기억나는 이야기들은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한국 대학의 교원 임용 방식이라던가 조교들이 받는 불합리한 대우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수렵에 관한 비판 등이다. (그 이야기들은 대개 이 책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박노자 교수는 늙스구레 하지도 않았고 아주머니도 아니었다. 눈빛이 맑을 것 같은 러시아 출신의 젊은 사학자였다. 귀화 한국인으로서 그가 까발리는 한국사회의 모습은 쉽게 부정하기 힘든 우리의 부끄러움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신의 상황에 쉽게 익숙해지고 또 의도적으로 익숙함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런 탓에 우리 스스로 쉽게 짚어내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박노자 교수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그 비판이 국외자의 무책임하고 선정적인 문제제기로 빠져들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때로는 드러나게 또는 드러나지 않게 박노자 교수는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독자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그도 자신의 이러한 비판이 국외자의 불평 정도로 읽히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듯 하다.
귀화 한국인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사실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붙여졌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심지어는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귀화 한국인인 박노자 교수를 정말 진심으로 '우리들' 속에 받아들여줄 수 있겠는가?
박노자 교수가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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