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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수

이문재


형수가 죽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감자를 구워 소풍을 간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개구리들은 땅의 얇은
천장을 열고 작년의 땅 위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려 있다
나무들이 가지마다 가장 넓은 나뭇잎을 준비하려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영혼은 온몸을 떠나 모래내 하늘을
출렁이고 출렁거리고 그 맑은 영혼의 갈피
갈피에서 삼월의 햇빛은 굴러떨어진다
아이들과 감자를 구워 먹으며 나는 일부러
어린왕자의 이야기며 안데르센의 추운 바다며
모래사막에 사는 들개의 한살이를 말해주었지만
너희들이 이 산자락 그 뿌리까지 뒤져본다 하여도
이 오후의 보물찾기는
또한 저문 강물을 건너야 하는 귀갓길은
무슨 음악으로 어루만져주어야 하는가
형수가 죽었다
아이들은 너무 크다고 마다했지만
나는 너희 엄마를 닮은 은수원사시나무 한 그루를
너희들이 노래 부르며
파놓은 푸른 구덩이에 묻는다
교외선의 끝 철길은 햇빛
철 철 흘러넘치는 구릉지대를 지나 노을로 이어지고
내 눈물 반대쪽으로
날개로 흔들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무한정 날아가고 있는 것은


* tirol's thought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려'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시라.
누군가는 그 아이들 옆에 앉아있는,
아버지라고 보기엔 조금 젊어보이는,
그 아이들의 보호자처럼 보이는 그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공중도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그의 무신경을 마음 속으로 힐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사연을,
삼촌과 함께 '감자를 구워 소풍을 나오듯'
어미의 무덤을 찾은 철없는 아이들의 사연을 알고 난 후에도
그 아이들을 향해 비난의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자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가 비난하고 원망하고 욕하는 사람들의 속 사정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사정을 깊이 깊이 알고 난 후에도
우리가 비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들은 얼마나 오만한지,
내가 보는 것이, 내 생각이 전부라고 믿고
얼마나 거들먹거리며 살아가는지.
참을 수 없을만큼 내 눈에, 귀에 거슬리는 일이 있을 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을지 모른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못할까.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또 나름의 사연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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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그때그넘 개츠비의 첫문단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어디 그렇게 살기 쉽던가요.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2006.02.28 18:29
  • 프로필사진 tirol 덕분에 오랫만에 The Great Gatsby를 뒤적거려봤습니다. 감회가 새롭네요.
    혹시 첫 문단의 내용이 뭘까 궁금해하실지도 모를 다른 분들을 위해서 옮겨 적어둡니다.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 F.Scott Fitzgerald
    2006.03.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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