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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가을에 - 김명인

by tirol 2006. 10. 17.
가을에

김명인


모감주 숲길로 올라가니
잎사귀들이여, 너덜너덜 낡아서 너희들이
염주소리를 내는구나, 나는 아직 애증의 빚 벗지 못해
무성한 초록 귀때기마다 퍼어런
잎새들의 생생한 바람소리를 달고 있다
그러니, 이 빚 탕감받도록
아직은 저 채색의 시간 속에 나를 놓아다오
세월은 누가 만드는 돌무덤을 지나느냐, 흐벅지게
참꽃들이 기어오르던 능선 끝에는
벌써 잎 지운 굴참 한 그루
늙은 길은 산백으로 휘어지거나 들판으로 비워지거나
다만 억새 뜻 없는 바람무늬로 일렁이거나


* tirol's thought

비를 본 지 오래된 것 같다.
비가 한번 내리고 나면 가을은 한결 깊어지겠지.

시간을 받아들이며 너덜너덜 낡아가는 잎사귀들이 부럽다.
내게도 달려있는 '무성한 초록 귀때기마다 퍼어런/잎새들'을 본다.
아직 벗지 못한 애증의 빚,
그저 채색의 시간 속에 놓여지기만 한다고 탕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터인데
어떻게 해야 나도
염주소리를 내는 잎사귀들처럼 그렇게
낡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