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676 밥 먹는 법 - 정호승 밥 먹는 법 정호승 밥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 것 눈물로 만든 밥보다 모래로 만든 밥을 먼저 먹을 것 무엇보다도 전시된 밥은 먹지 말 것 먹더라도 혼자 먹을 것 아니면 차라리 굶을 것 굶어서 가벼워질 것 때때로 바람부는 날이면 풀잎을 햇살에 비벼 먹을 것 그래도 배가 고프면 입을 없앨 것 창비시선 161,정호승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 tirol's thought 똑같은 시를 신문에서 읽을 때와 시집에서 읽을 때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이 시는 신문에서 먼저 읽었다. 그리고 나중에 시집을 샀는데 시집에서 읽는 시는 맛이 나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으며 습관적으로 펴는 신문. 흥미있는 기사가 없어도,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어내려가는 글자들.먹고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밥상 앞에 무릎도 꿇고,.. 2001. 9. 16.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선운사 동백꽃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 받고 살얼음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때문에 그까짓 여자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서서 엉엉 울었다. * tirol's thought 그까짓 사랑때문에 울지 말자...그래 울지 말자...울...지...말...자... 2001. 9. 16. 배를 밀며 - 장석남 배를 밀며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장석남, 왼쪽 가슴아래께에 온 통증, 창작과 비평사, 2000. * tirol's thought 왜 모든 뒷모습은 슬픔인가? 아니 슬픔은 왜 언제나 뒷모습으로 기억되는가? 그녀의 뒷모습. 그녀가 타고 떠나던.. 2001. 9. 16. 배를 매며 - 장석남 배를 매며 장석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장석남, 왼쪽 가슴아래께에 온 통증, 창작과 비평사, 2000. * tirol's thought 그래, 사랑은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오듯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그걸 본능적으로 잡아다 매는 사.. 2001. 9. 16. 스팀목련 - 강연호 스팀목련 강연호 내가 다니던 대학의 문과대 건물 옆엔 스팀목련이 한 그루 있다 해서 진달래 개나리보다 한참은 먼저 핀다 해서 해마다 봐야지 봐야지 겨울난방 스팀에 쐬여 봄날인 듯 피어나는 정말 제철 모르고 어리둥절 피어나는 철부지 목련을 꼭 봐야지 벼르고 벼르다 졸업을 하고 벼르고 벼르다 후딱 십년도 넘어버린 나는 늘 봄날을 놓치고 엎치락뒤치락 추위와 겯고트는 때 아닌 스팀목련도 놓치고 내가 대학 다니던 청춘도 놓치고 내가 대학 다니던 청춘도 놓치고 채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나는 늘 나도 놓치고 * 곁고틀다: [시비나 승부를 다툴 때 지지 않으려고]서로 버티어 겨루고 뒤틀다. * tirol's thought 이제 '스팀목련'은 다 졌을게다. 늦겨울에 한 번 보러가야지 했는데... '나도 늘 나를 놓치.. 2001. 9. 16. 사랑 - 김용택 사랑 김용택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 2001. 9. 16. 이전 1 ··· 107 108 109 110 111 112 1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