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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 창 밖 아직 어두운데 허리에 손 짚으며 힘들게 일어서는 당신 지난 밤 기침 소리같은 그릇 부딪치는 소리 들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물소리 늦은 저녁 한쪽 무릎 세우고 앉아 오래 묵은 김치와 국 한사발 밥말아 긴 한숨처럼 넘기시는 당신 모습 보이네 밥물처럼 차오르는 슬픔 닦으며 어머니 오늘도 아침을 지으시네 1994. 4. 15.
소래포구에서 소래포구에서 무엇하러 왔나 이곳에 오래전 살았던 옛집 문밖을 서성이듯이 흘낏 넘겨다본 바다엔, 때 안간 빨래들처럼 퍼덕거리는 갈매기들 그릇가로 밀쳐낸 선지 덩어리같은 갯벌뿐 시장이 보이는 이층 식당에서 정작 시켜논 회는 못먹고 마알간 술에 매운탕의 생선뼈만 뒤적거리는 마음 자꾸만 허리가 아프다. 1994. 3. 25.
흑백사진 흑백 사진 자 여길 보세요 웃어요 그래 옳치 싸구려 사진기를 든 젊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지저분한 흙담아래 까만 고무신 바지조차 돌려입은 저 아이의 통통한 미소는 키작은 채송화 향기 어스름한 저녁 하늘 훈훈히 흐르는 굴뚝 연기와 노오랗게 묻어나는 감자타는 내음 어느새 창밖은 암실처럼 어두워지고 눈물처럼 밀려드는 먼 산동네의 불빛 꺼칠해진 턱을 만지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빛바랜 세월의 그림자 나 그리고 아버지의 뒷모습 1992. 6. 25.
연가 연가 tirol 언제나 그대와 나 사이의 강물가를 거닐며 혼자울었습니다 손을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있는 힘껏 목청을 울려보아도 그대는 그저 저편에서 눈부신 웃음만 짓고 계셨죠 나를 보시기나 한건지 하여튼 난 그댈위해 노랠부르고 그대를 위해 성을 쌓았읍니다 행복했읍니다 가끔 행여 그대가 나를 모른체 하시는 것 같음에 서러워 그대 몰래 그늘가 벽에 머리를 찧으며 눈물처럼 흐르는 피를 우두커니 지켜보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그대는 늘 떠나시고 그대가 막 떠나시며 남기는 연분홍 빛 눈웃음에 가슴졸이며 내 영혼 서서히 이울어져감을 봅니다 그대없는 내가 무슨 소용 있을까요 그대는 내 시작이며 끝입니다 사랑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오늘도 난 강가에 나와 앉아 노랠부르고 성을 쌓습니다 늘 떠나시며.. 1991.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