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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다녀왔다. 고서화와 자기, 오래된 목가구, 장신구 등으로 이루어진 전시였다. 이런 종류의 전시는 이전에도 여러 미술관에서 본 적이 있지만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전시는 지금껏 보아왔던 전시들과 느낌이 조금 달랐다. 뭐가 달랐던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작품은 작가의 말을 품은 매개체다. 작품은 말을 하고 싶어 한다. 미술관은 작품의 말을 관람객에게 들려주는 곳이다. 좋은 전시는 작품이 하는 소리를 잘 들려주는 전시가 아닐까?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전시는 오래된 작품들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이 관람객들에게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신경을 쓴다. 내가 주목한 포인트는 네 가지 정도이다. 작품을 위한 조명, 작품의 높이와 배치,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유리를 걷어내기, 작품을 위한 틀 만들어주기. 

 

첫 번째, 전시 조명이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미술관의 조명이 작품을 돋보이도록 비추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한데 이 전시장의 빛은 다른 전시장의 조명과는 조금 다르다. '형광'의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할까? 조명이 어디서 오는가를 살펴보니 천장에서 설치된 조명으로부터 내려오는데 실제 작품을 보면 마치 작품에 형광물질을 발라놓았거나 작품 뒤쪽에 백라이트를 켜 둔 느낌이 난다. 한마디로 '자체발광'하는 것 같은 조명? 이런 조명 탓에 작품들이 더 근사하게 보이고 관람객은 작품에 집중하게 된다.

 

두 번째, 다른 전시장들에 비해 작품들이 조금 높게 전시되어 있다.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닌데 전반적으로 작품의 위치를 선정하는 데 있어 관람객의 눈높이와 작품의 성격을 좀 더 세밀하게 고려한 것 같다.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작품을 감상하기가 쉽고 작품과 나의 눈높이가 달라지니 작품에 대한 느낌도 달라진다. 작품이 유리 전시관 안에 수평으로 펼쳐져 있고 관람객이 허리를 숙여 작품을 보는 대신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추어 작품을 벽에 펼쳐 걸어두면 관람객은 바로 서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높이의 변화는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어른이 몸을 숙이거나 아이들에게 발받침을 만들어주어 눈을 마주치며 얘기할 수 있게 하는 대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병풍 작품을 원래 사용되던 대로 바닥에 두고 지그재그로 세워두는 것이 아니라 다 펼쳐서 전시장 벽에 붙여 올려놓으니 평소에 보던 병풍 작품들과 다른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김규진의 '월하죽림도'의 경우 마치 근사한 저택의 거실 통유리를 통해 밤 풍경을 내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시선이 달라지면 대화의 질이 달라진다. 

 

세 번째, 관람객과 작품 사이에 유리를 걷어내 거리감을 줄인다. 도자기가 놓여있는 유리 전시관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대신 철망으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 작품을 볼 수 있게 한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서 문 안으로 들어가는 인원은 5명 이내로 제한한다. 철망으로 된 문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손을 뻗으면 작품을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지만 교도소에서 수인과 접견인 사이에 놓여있는 투명 플라스틱 벽을 걷어낸 것 같은 느낌이랄까? 투명막을 걷어내고 나니 작품들의 얘기가 더 잘 들리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목가구를 위한 프레임을 만들어 전시를 했다는 점이다. 가구를 틀에 가두어두면 답답해 보일 듯도 한데 프레임 윗 쪽에도 가구를 배치하고 프레임의 높낮이를 다르게 하여 입체감을 줌으로써 단조로움과 답답함을 피했다. 오히려 가구들의 입면을 서로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서 새로웠다. 작품이 원래 쓰이던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쓰임새를 마친 오래된 가구들에게 자기를 다르게 드러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좋은 인터뷰어는 인터뷰이가 가진 개성과 장점을 잘 끌어내기 위해 좋은 질문을 고민한다. 더 나아가 어떤 장소, 어떤 분위기에서 더 좋은 대화가 가능할지 고려하는 인터뷰어가 훌륭한 인터뷰어다. 좋은 큐레이터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그동안 보아왔던 전시와는 조금 다른 작품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전시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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