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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한참 늦은) '아버지의 광시곡' 북토크 참석 후기

by tirol 2024. 6. 21.
(한참 늦은) '아버지의 광시곡'북토크 참석 후기
지난 6월 4일에 조성기 작가의 ‘아버지의 광시곡’ 북토크에 다녀왔다. (교회에서는 전도사님으로 불리시지만, 이번은 작가로서의 자리였고 산울교우가 아닌 참석자들도 계셔서 작가님으로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혼자 진행하셔야 한다는 걱정과 달리, 지난번 북콘서트보다 더 재미있었다. 책에 넣지 못한 아버지에 관한 기억으로 시작해, 질의응답, 참석자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발표, 작가의 모노드라마까지 한 시간 반이 금세 지나갔다.
질문 시간에 나는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쓰실 수 있는지, 작가로서 ‘자기검열’을 극복하는 비결 같은 게 있으신지,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질문했다. 작가는 소설 속에 실명이 거론된 사람들로 인해 곤란했던 사연과 함께 “작가는 노출증 환자이면서 동시에 자폐증 환자이다”라는 말로 답을 마무리했다. 어느 정도 ‘노출’에 대한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면 작가가 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아니, 자기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는 글을 쓸 때 솔직하게 쓰고 싶은 마음과 숨기고 싶은 마음 사이를 오가다가 지쳐서 글이 자꾸 짧아지고 납작해진다. 결국은 계속 써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책만큼이나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작가의 얘기도 좋았지만, 독자들이 발표한 ‘아버지의 추억’ 코너도 아주 좋았다. ‘세상에 자식 없는 사람은 있지만, 부모 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각자의 아버지에 대한 진한 추억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나누었다.
나는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고사하고 기억 자체가 많지 않다. 가끔 나의 책 읽기에 대한집착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무의식적인 노력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나에게 기준을 제시해주고, 인생의 교훈을 알려주고, 재미있고 슬프고 감동적인 얘기를 해줄 아버지 같은 존재를 책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언젠가 까뮈의 책 (‘최초의 인간’이었나?)을 읽고 나서 “나는 나의 아버지다”라는 일기를 썼던 날도 있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책 읽기로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글쓰기로는 어떨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희미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 내가 그리워하고 바랐으나 채워지지 않았던 아버지의 빈자리를 글로 쓰다 보면 그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그림자 같은 부재의 윤곽을 글로 써서 고정시키고 나면 막연한 헛헛함 같은 게 좀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문제는 다시 내가 작가에게 던진 질문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아버지의 광시곡’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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