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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4

비가 와도 젖은 자는 - 오규원 비가 와도 젖은 者는 오규원 巡禮 -1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싶어 다시 한 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江은 젖지 않는다.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江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魚族은 강을 거슬러 올라 하늘이 닿은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번뇌, 날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者는 다시 젖지 않는다. * tirol's thought 어제 갑자기 이 시가.. 2021. 7. 4.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 오규원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오규원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 tirol's thought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어디 새벽에만 들겠는가? 허둥지둥 밥을 먹다가, 끝날 것 같지 않은 논쟁을 벌이다가, 명하니 창 밖을 보며 퇴근하다가, 불쑥불쑥 편두통처럼 찾아오는 질문. '잘못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2014. 1. 29.
티롤의 일곱번째 포임레러 [2002.12.31. TUE. 티롤의 일곱번째 포임 레러~] ◈ tirol's greeting 어느새 2002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언젠가 떠날 사람이란 걸 미리 알았다고 해서 이별의 서운함이 덜하지 않듯이, 1월1일이 있으면 12월31일도 있는 게 달력인란 걸 안다고 해서 한 해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이 덜해지진 않는가 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쉬움 없고, 후회없던 12월31일이 어디 있었나요? 매스컴에서는 '유난히도'라는 말에 유난스럽게 힘을 주어가며 올해의 '다사다난했음'을 강조해 대지만 또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한해는 언제였습니까? 살아가는 일이란, 이쪽에서 보면 박진감 넘치는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같기도 하고... 저쪽에서 보면 우수수 잠이 밀려드는 프랑스 예술영화 같기도 하고... 결국 그.. 2003. 1. 2.
비가 와도 젖은 者는 - 오규원 비가 와도 젖은 者는 오규원 순례 -1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江은 젖지 않는다.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江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魚族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은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번뇌, 날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者는 다시 젖지 않는다. /오규원 시집, 사랑의 기교, 민음사, 1978/ * t.. 2003.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