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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티롤의 열한번째 포임레러

by tirol 2003. 5. 18.
[2003.5.11. SUN. 티롤의 열한번째 포임 레러~]

◈  tirol's greeting

무더운 날씨와 퍼붓는 장대비가
계절을 헷갈리게 만드는
당황스런 오월입니다.

예기치 못한 계절의 변덕 앞에서
무의식적인 기대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봄비는 부슬부슬 내려야 하고
삼십도에 가까운 기온은 여름에 어울리는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의 취약성에 대해서.

나이를 들어간다는 건
마음이 자란다는 건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수많은 일들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너그러이 받아들일 마음의 크기를 넓혀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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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day's Poem

목련이 진들

박용주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 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이 땅에 봄이 오면
소리없이 스러졌던 영혼들이
흰 빛 꽃잎이 되어
우리네 가슴 속에 또 하나의
목련을 피우는 것을

그것은
기쁨처럼 환한 아침을 열던
설레임의 꽃이 아니요
오월의 슬픈 함성으로
한닢 한닢 떨어져
우리들의 가슴에 아픔으로 피어나는
순결한 꽃인 것을

눈부신 흰 빛으로 다시 피어
살아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마냥 푸른 하늘도 눈물짓는
우리들 오월의 꽃이
아직도 애처러운 눈빛을 하는데
한낱 목련이 진들
무에 그리 슬프랴

<1988.4>
* 5월 문학상 수상작(전남대)

/박용주 시집, 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장백, 1989/  

■ 벗들에게 띄울 시를 고르느라 시집을 뒤적거리다
   대학1학년 때(1989년) 영문과 문학반 선배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박용주의 시집을 찾아냈습니다.
   시인은 1973년생이니까 이 시를 쓴 1988년엔 중학생이었겠지요. 놀랍죠?

   5월의 광주.
   쉽게 잊혀지지 않을, 아니 잊어서는 안되는 기억인데, 잊혀져 가는...

   내 안의 들끓는 나를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징징거리는 나에게
   이 어린 시인이 의젓하게 한말씀 하십니다.
   "한낱 목련이 진들/무에 그리 슬프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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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osing

*  M.Scott Peck의 '끝나지 않은 길(The Road Less Traveled)'를 읽고 있는 데 재미있습니다.
    정신분석전문의인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랑'과 '성장'에 관한 생각들을 따라가다보면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사랑'에 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꺼리들이 수도 없이 생겨납니다.

* 주일 오후 네시 예배를 마치고(한 다섯시 반쯤 끝납니다),
   한강 둔치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차의 양쪽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부드러운 저녁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막히지 않는 동부간선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일.
   (93.1 MHz, KBS 제1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틀어놓고^^)
   오랫만에 느껴보는 행복감.

* 동생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넘겼습니다.
  호주에 한달 일정으로 연수를 가는데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해서
  이 참에 완전히 넘겨버리고 저는 새로운 카메라를 사려구요.
  G3를 구입할까 하는데 가격이 만만치는 않네요.
  승진 후 받는 첫월급으로 '저질러볼까'  궁리 중입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치곤 너무 큰가요?

* 출근할 땐 월요일 같고, 퇴근할 땐 금요일 같던, happy week가 이젠 완전히 끝났네요.
  흐트러진 리듬 빨리 찾으시기 바라고
  평안하고도 활기찬(이게 가능한가?) 5월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모두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