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어주는 남자

티롤의 열두번째 포임레러

by tirol 2003. 5. 26.
[2003.5.18. SUN. 티롤의 열두번째 포임 레러~]

◈ tirol's greeting

일요일 오후,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멀지 않은 친척의 결혼식 때문에
고향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또다른 누군가의 결혼소식이라든가
누구누구는 둘째 아들을 낳았다더라
누구네는 새 집을 샀다더라
또 누구는 회사에서 승진을 했다더라 따위의
소식들을 바리바리 챙겨오셨겠지요.

그리곤
이렇게 화창한 초여름 일요일 저녁에
아무 약속도 만들지 않고
기어이 집으로 기어들어오는
나이 많고 죄많은 아들을
근심어린 표정으로
한동안 바라보시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뭘
우짜겠습니까?

조용히 밥먹고
방에 들어와 앉아
반성문이나 쓰는 수 밖에요.

여러분은
일요일 저녁에
뭘 하셨나요?


=-=-=-=-=-=-=-=-=-=-=-=-=-=-=-=-=-=-=-=-=-=-=-=-=-=-=
◈ Today's Poem

침묵은 숲이 견디고 있는 상처이다

김윤배

운길산 수종사 가파른 산다실에 앉아
녹차잔 속으로 양수리 두 물길 부른다
찻잔 휘돌아 나가는 북한강은
담고 왔던 산색 찻잔 속에 남긴다
산색마저 상처로 남는 산다실의 고요
머무르다 떠나는 모든 것들이 상처가 되는 양수리
용수철처럼 강물 튀어오르던 햇살
다실 낭떠러지 아래 세석무지에 스며
세석들 강물 소리 꿈꾸게 하지만 햇살 떠나가면
상처를 알게 될 저 신열의 웅성거림
상수리나무숲 강안까지 밀고 가던 침묵들
우수수 숲을 흔든다 침묵은
상수리나무숲이 견디고 있는 상처이다
가슴으로 날아오르던 새떼들
가을 강에 은박지처럼 누워 있는
붉은 시간 물고 강 하구로 사라지고
강물 소리 상처의 몸 오래 감싸고 있다
이제 내가 양수리를 떠나며
평생 치유되지 않는 상처 남긴다

/김윤배 시집, 부론에서 길을 잃다, 문학과지성사, 2001/


[tirol's thought]
머무르다 떠나는 모든 것들이 남기는 상처.
살다가 가끔 마주치는
유난히 소란스러운 것들은
어쩌면 상처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상처의 침묵을 견뎌내는 상수리나무숲과 같지 않다고
누구를, 무엇을 비난할 수 있으랴
어디에, 누군가에게
평생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남겼을지도
모르는 내가.

=-=-=-=-=-=-=-=-=-=-=-=-=-=-=-=-=-=-=-=-=-=-=-=-=-=-=-=-
◈ Closing

* 3주째 연속으로 포임레러를 받아보시니 신기하지요?
이게 얼마나 가겠냐구요? -_-;;
글쎄요...얼마나 가는지 한번 지켜 보시지요.
참, 메일 받아보시고 피드백 좀 주세요.
('고른 시가 그게 뭐냐?', '내가 술 사줄테니 궁상떨지 말어라'....뭐 어떤 얘기라도 좋습니다.)

* 지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신임 대리 교육을 다녀왔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적도 있듯이,
늦게 취직해서 남들 과장 달 나이에 대리된 게 뛸듯이 기뻐할 일도 아니고 (게다가 속도 안좋고) 해서
저녁 술자리에서는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있다가 교육 마치고 오려고 했는데
한잔 두잔 마시다 보니 이틀 밤 연속 무지하게 마시고
나이 어린 승진 동기들 앞에서 스타일 구겼습니다. 남사스럽습니다. 에궁.

* 동생에게 디카를 넘기고 새 디카 구입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라 사진을 못찍고 있네요.
이촌동 한강둔치의 보라색 아이리스가 참 예쁘던데...

* 행복한 한주 보내시길...

=-=-=-=-=-=-=-=-=-=-=-=-=-=-=-=-=-=-=-=-=-=-=-=-=-=-=-=-
☞ connet to tirol's homepage : http://tirol.x-y.net
☞ register tirol's MSN ID : tirol@hitel.net
=-=-=-=-=-=-=-=-=-=-=-=-=-=-=-=-=-=-=-=-=-=-=-=-=-=-=-=-

'시 읽어주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마를 견디며 - 이응준  (0) 2003.07.03
여우 이야기 - 권혁웅  (0) 2003.06.25
티롤의 열한번째 포임레러  (0) 2003.05.18
티롤의 열번째 포임레러  (0) 2003.05.05
물고기 - 임남수  (0) 2003.04.23